침잠
2017년 4월 30일 강연 내용 요약
우리의 본성을 마음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마음 속을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잠시만 눈을 감고 내면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무엇이 보이셨습니까? 본성을 찾으셨나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저 어둠만 보이지 않던가요?
이 그림은 깨달음의 서막인 <내면으로의 침잠> 이며 작품이 담긴 저 긴 캔버스는 선정을 통해서 마음 깊은 곳, 깊은 내면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 처음에 보이는 건 어둠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빛나는 본성을 발견하지 못한 저 깊은 어둠만이 보입니다.
어둡고 보이지 않으니 성현들은 무지와 미망이라고도 표현하셨죠.
오직 소수의 성현들만이 표면의식의 장막을 뚫고 그대로 그 어둠 속으로 당당히 들어가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본성의 빛을 발견하고 무지와 미망으로부터 해방되셨습니다.
저 또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번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본성을 찾아 끝을 알 수 없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떠나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으로 침잠해 깊이 내려가면서 제가 처음에 발견한 것은 본성이 아니라 어둠이었습니다.
본성을 찾기 위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묵상과 성찰을 통해 의식의 심연 속을 찾아 헤매도 어둠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들어가면 과거가 나오고 또는 잡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모든 색을 덧칠하면 결국에는 검은 색, 어둠이 되듯이 잡념, 사념, 집념, 아욕, 욕망, 슬픔, 고통, 두려움, 모든 건 떠오르는데요, 그래 봤자 그건 어둠이었어요.
내 본성이, 나얼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매던 중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내가 뭘 찾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 될 때 뭔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저의 생각을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봤어요.
그 전에는 제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못 봤어요.
왜 일까요?
산 속에 있을 때는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산 안에 있으니 산 전체는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마음 안에 갇혀 있을 때는 마음이 보이지 않았어요.
내 스스로를 보려 하지 않고 외부만 바라보니까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 조차도 볼 수 없었죠.
그러다 무지와 미망 속을 헤매던 여정의 임계치가 초과된 어느 순간,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보인 겁니다.
마음 안에 갇혀서 바깥만 보던 존재가 무엇 때문인지 내 스스로 생각이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건 빛이었어요. 왜냐? 알아차렸거든요. 모른다는 것은 어둠인데 내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니까 그게 빛이었습니다. 인식한다는 것, 자각한다는 것, 의식한다는 것, 안다는 것은 빛입니다.
앎은 빛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가운데 빛이 있고 이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나뭇가지처럼 점점 커져 나갑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저 중심의 빛, 근원에서 의식은 방사되지만 생각의 물결, 생각의 가지들을 따라 흐르고 점점 펼쳐 나가는 이 생각의 가지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생각이 생각을 물고 계속 펼쳐져 나가지만 항상 아상의 한계에 갇히게 됩니다.
처음엔 어렴풋한 사고작용의 빛만 발견했지만 인식력이 커져갈수록 서서히 내 아상, 에고의 사고작용이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생각이 생각을 물고 이어져 가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는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넘어설 수 없는 벽들이 있어요. 바로 생각의 벽입니다.
의학과 과학에서는 내 두뇌가 형성되는 의식의 회로도, 지도를 ‘뉴런 시냅스’라고 부릅니다.
제가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는 저 마음의 구조, 생각의 회로도는 업과 습으로 형성된 ‘멘탈 시냅스’, 정신의 회로도입니다.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업과 습으로 이뤄진 생각의 수로를 따라 흐르는 두뇌의 회로도, 마음의 사고작용 알고리즘, 멘탈 시냅스의 구조를 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Original Main Title before completion into Trans-Art]
Who would want to go into the 'Abyss of Darkness'
침잠: 내면의 어둠 속으로 | ||
심연의 어둠 속으로 침잠하며 잠재의식 속 내제된 업장 시냅스를 발견하는 순간을 시각화한 작품
[작품 영감 스켓치]
과연 그 누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도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심연의 어둠을 마주할 것인가:
단호한 결의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때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작용의 시각화
의식의 근원에서 방사된 하나의 생각에서 가지를 치고 에고의 구조 속, 멘탈시냅스 안에서 휘몰아치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을 시각화 한 작품
[Original Title before elaborated into Trans-Art]
[Who would want to go into Abyss of Darkness-
Risking to be consumed by 'Irreversible downfall into Darkness']
[과연 그 누가 어둠에 영원히 사로 잡힐 위험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내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심연의 암흑 속으로 침잠하겠는가]
흰 빛을 제외한 모든 색을 합하고 덧칠하면 어둡고 검게 보여집니다.
마찬가지로 무수한 생각과 감정, 기억과 느낌이 점철된 우리의 내면은 그렇게 검고 어둡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있는지 의식의 빛을 비춰봐도 "내가 바로 본성이다"하고 딱히 드러나는 것은 없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어둡습니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거나
자신의 본성을 탐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본다고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성 또한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간혹 그런 발상을 한다 하더라도
귀찮고, 불편하고, 방법을 모르고,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합니다.
하지만 삶이 고통스럽거나 극단적으로 힘들 때
내 존재의 이유가 혼돈되고, 스스로 불안하고 의심되고 두려울 때
인간은 비로소 해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 저항에 부딪히곤 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이 자아(에고)의 저항으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알지 못하는 거짓된 자아는
자신의 심연에 감추어진 어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진실의 광명, 의식의 빛을 비추어 보려 하지 못합니다.
내가 평생 믿어왔던 것이 틀렸거나 내 삶의 척도나 관점이 잘못되었을 때에 대한 두려움,
또는 내가 정말 하찮고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이거나,
잘못된 실패자이거나,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는,
존재의 해악과 패악에 대한 두려움은 무의식적인 저항을 만듭니다.
거기에는 잠재 의식에 내재된 죄책감, 후회.
집착과 두려움, 불안과 공포, 불신과 의심, 모든 감정과 생각의 연합체가
의식의 표면 아래에 어둠과 곡해, 무지와 미망의 경계선을 깊숙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누가 그 어둠을 뚫고 심연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그러한 시도를 한 존재 조차 많지 않습니다.
오직 불굴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진실을 찾으려는 소수의 구도자만이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 봤을 뿐입니다.
사막과 광야에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천불대에서.
내면의 무지와 미망을 마주하고 어둠을 초월해 그들은 초월자가 되었습니다.
또는 천재지변이나 극단의 위기로 인해
불변할 것 같던 화석 같은 아상의 껍질이 벗겨지고
철옹성 같던 에고의 토대가 무너져 내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심연에 의식의 빛을 비춰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표면의식의 한 꺼풀 밑으로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내면, 잠재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작은 의식의 등불을 가지고 끝없는 북극의 심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심연의 바닥에서 자신이란 존재를 구성하고 있던 의식의 회로도를 뚫고 들어가 존재의 빛을 발견한다면,
평생 동안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영역에서 나를 사용해 내 삶을 살아오던 사고의 패턴,
에고의 알고리즘, 마음의 작용방식과 스트럭쳐, 업장의 에너지원과 생존방식을 깨닫고
마음의 멘탈시냅스에서 고요히, 하지만 당당히 걸어나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서 벗어나 의식의 심연에서 맑고 밝게 빛나는 자신의 본성을 마주 한다면,
내 실체는 삶의 어떠한 상황과 의식의 요동에도 불변하다는 사실,
그 맑고 밝은 실체의 참된 의도를 깨닫는다면,
자신을 옥죄던 모든 무지와 미망이 한번에 비춰져
맑고 밝은 바른 모습으로 의식의 표면위로 다시 솟아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십시오.
삶의 그 어떤 무지와 미망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불변한 내면의 본성을 마주하기 위해 의식의 등불을 비추시길 바랍니다.
작품 디스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