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cm * 244cm 스텐, 동분칠, 슈퍼미러
The Gates Ⅱ : In the name of Father | ||
* [더 게이츠]는 시각견성이 구체화 되기 전 트랜스아트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추후 보는 각도에 따라 형상이 변화하는 렌티큘라 작품, 온라인 미술인 이볼빙아트로 진화했습니다.
본 작품은 초기 조각형태의 작품으로 거울을 사용한 [더 게이츠]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 어거스트 로뎅에 대한 오마쥬 ]
“로뎅은 지옥의 문을 20년 동안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의 작품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나 세상 너머의 문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문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압도적이고 웅장한 존재감을 느낀 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다시 지옥의 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프랑스가 아닌 서울에서.
시시때때로 나는 플라토 겔러리로 가 지옥의 문을 묵상하며 의식 속으로 침잠하였다.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을 성찰하고 사색하는 것일까?
로뎅이 지옥의 문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로뎅의 마음에 비친 지옥의 문을 열면 뭐가 있을까?
지옥의 문에 깔린 고요함이 해답을 속삭일 때까지 나는 보고 묻고 느끼고 다시 봤다.
문의 목적은 열고 들어가 목적지로 도달하기 위한 것,
문의 완성은 열고 들어갈 곳을 발견하기 위함이 아닐까?
로뎅은 형상너머의 문을 열고 자신의 형상을 떠나기 전까지 과연 자신의 목적지를 발견한 것일까?
지옥이란 신의 형벌이며 가장 큰 고난이다.
지옥의 문은 들어가기 전에는 끝없는 고통의 시작을 의미하는 문이다.
하지만, 그 문의 정 반대편에서는 고통의 끝을 상징하는 문일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 이지만
내 마음도 지옥과 죽음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삶이 지옥이었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장 큰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으며
그 지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마치 어둠 속 낙뢰가 일순간이나마 숨겨진 비경을 드러내듯,
견성의 찰나를 엿보았다.
그때의 체험으로 깨달은 찰나의 진실은
지옥을 경험하던 에고의 마음 너머 근원에는
그 어떠한 삶의 상황 : 슬픔, 고통 그리고 지옥과 죽음마저 범접할 수 없는
불변하며 고요한 맑고 밝은 나의 참된 본성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고 내 에고에게는 가장 큰 형벌이었던,
지옥 같던 세상을 향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든 거짓된 것들을 두고 건너온 자리에도 변치 않고 남아있던 내 본성을 만날 수 있었다.
원망과 저주를 버리고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마치 나를 위해 완벽히 재단된 나의 오롯한 선택처럼 받아들였을 때,
신의 선물, 평화를 얻었다.
그것이 바로 내게는 천국의 입구.
신의 선물이란
우리가 알던 지옥, 에고에게는 가장 큰 고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불가피한 그러함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조건 없이 수용할 때,
오히려 자신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천국을 향한 문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신의 은총이 아닐까?
과연 로뎅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지옥의 문을 완공할 수 있었을까?
로뎅이 아무리 훌륭한 조각과 위대한 형상을 미완의 작품에 덧붙인다 하여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지옥의 문은 로뎅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일 거라는 사실이다.
The Gates [재해석된 지옥의 문: 완공된 천국의 입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지옥의 면은 상처받고 퇴색되어 손상된 녹슨 거울이
천국의 면은 맑고 깨끗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비춘다.
어느 면에 서서 자신을 비출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
그것이 신의 은총이며
누구도 나 자신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자유의지의 실체이다.
천국은 장소나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내면의 상태이며
의식의 차원이다.
지옥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 작품은 팝업 모바일 갤러리에 로테이션으로 전시되는 중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형상 너머의 본질은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미술은 언어를 넘어서 시각을 통해 느끼는 본질입니다.
[시각견성]은 제가 스스로 경험하고 체험한 것, 나얼의 발견과 각성의 순간들, 의식상승의 과정, 순수의식의 상태에서 형상 너머로 발견하고 본 것을 그대로 미술에 표현해 관객이 제가 본 바를 그대로 느끼고 알수 있게 하기 위한 [깨달음과 깨어남의 시각화] 작품들 입니다.
[시각견성]은 우리의 본성인 나얼을 발견하기 위한 [게이츠] 이며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릴 첫 작품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트 로뎅의 미완작 [지옥의 문]에서 ‘문’을 찾다
더 게이츠
시각견성의 시그니처 작품인 [더 게이츠]는 어거스트 로댕의 미완 조각 걸작인 ‘지옥의 문’ 에 표현된 단테의 신곡, 연옥의 조각상들이 아니라 ‘문’ 자체만을 집중적으로 재해석해 천국의 입구로 완공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로뎅의 지옥의 문을 오랜 시간 성찰하고 묵상한 후 ‘지옥의 문’은 끝없는 고통을 상징하지만 문의 반대편에서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며, 지옥의 문인 동시에 천국의 문일수도 있는 천국과 지옥의 양면성을 재해석하여 지옥의 면과 그 반대편의 천국의 면으로 이루어진 [더 게이츠]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신의 형벌이자 끝없는 고통의 시작을 상징하는 지옥의 문과 부처가 고통의 끝이라 정립한 초탈의 귀결, 나르바나의 의미를 거울이란 매개체를 사용해 재정립해 “더 게이츠”란 작품을 통해 서양종교철학과 동양불교철학의 본질을 조화롭게 통합합니다.
작가가 재정립한 [더 게이츠]는 지옥의 문인 동시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고 천국의 입구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한 지옥 같았던 현실과 죽음을 마주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깨달은 바를 작품에 투영해 지옥의 문이 가진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의미와 그 안에 내재된 신성한 진리를 표현했습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과 세상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원망하거나 절망하고 포기하는 대신 불가피한 삶의 그러함을 자발적 순응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때 지옥 같은 현실로 향하는 문은 상처받은 에고를 다 내려놓은 자리에서도 빛나는 자신의 참된 본성을 만날 수 있는 게이츠가 된다고 말합니다.
상처받고 퇴색돼서 손상된 녹슨 거울로 이루어진 지옥의 면으로 자신을 비출지, 아니면 맑고 깨끗한 있는 그대로의 천국의 면으로 자신과 세상을 비출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신의 선물이고 은총이며 그 어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유의지의 실체라는 것을 [더 게이츠]를 통해 표현합니다. 더불어 천국이나 지옥은 장소나 공간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이자 의식의 차원이며, 더 게이츠를 통해 에고의 어둠을 비출지 자신의 불변한 본성을 비출지, 더 게이츠를 열고 지옥을 향할지 나르바나에서 현존할지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상태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트 로뎅의 미완작 [지옥의 문]에서 ‘지옥의 문’을 찾다